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흐메트 2세 (문단 편집) == 개요 ==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결코 사랑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인기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닌 지성, 에너지, 단호함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포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업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 >스티븐 런치만(Sir James Cochran Stevenson Runciman, CH, FBA, 1903년 6월 7일 ~ 2000년 11월 1일),《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자 초대 [[파디샤]]이며 자칭 [[로마 제국]]의 황제.[*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의 [[차르]]-[[황제]]와 더불어 동로마 정복 이후 자신들이 그 자리를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제3의 로마]] 항목 참고. 이 로마 황제(Kayser-i Rum) 호칭에 대해 서유럽은 그러려니 말려니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동로마 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정교회]]에서는 이를 인정했다. 애초에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 세워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모두 오스만 술탄에 의해 재가받았다. 오스만 제국에는 당시에는 로마인(Ρομαίοι)이라 불렸고 오늘날에는 그리스인이라 불리는 민족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고, 오스만 제국은 기존의 정교회 교구를 몇몇 교구를 조정한 것을 빼고는 거의 그대로 인정해 이들을 통치했다. 심지어 정교회 자치구나 다름없는 아토스 산에 대한 정교회의 권한까지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정복왕|정복군주]] 중 하나이며[* 지명도 면에서는 메흐메트 2세가 최고라고 할 만 하지만, 영토를 확장한 정도나 군사적 역량에 있어서는 [[셀림 1세]]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니콜로 마키아벨리|마키아벨리]]는 정략론의 1권 19장에서 "사실 그(셀림 1세)는 조부(메흐메트 2세)의 명성을 능가할 만한 인물인 것 같다."라고 평했다.]이며 특히 [[동로마 제국]]과 그 수도 [[콘스탄티노플]][*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정복하여 '''정복자(Fatih, 파티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오스만 역사상 최초로 [[카이사르]]와 [[칼리파]]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 시절의 칼리프 호칭은 당시 맘루크 왕조에 망명 중이던 압바스 왕조의 후예도 가지고 있었고 이쪽이 더 정통에 가깝기 때문에 참칭에 가깝다. 진정으로 오스만 제국이 칼리프 타이틀을 가져온건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압바스 가문으로부터 칼리프 타이틀을 정식으로 넘겨받은 [[셀림 1세]]의 일이다.] 몇몇 [[튀르크]]계 귀족 가문들이 운영하던 왕국 '''오스만국'''을 다문화, 다민족 [[전제군주제|전제군주]]국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